손으로 가려진 입, 휘둥그레진 눈,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여자아이. 이미지는 사라지지 않고 며칠 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왜 그 아이는 입을 가리고 있었을까, 왜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었을까.
이미지를 떠올리며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갈지도 모른 채로 소설가 사만타 슈웨블린은 무작정 글을 쓰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작가 안톤 체호프의 조언을 따라서. 상황에 몰입하고 인물들을 따라가라, 그러면 조만간 어떤 일이 일어날 테니까.
사만타 슈웨블린은 세 차례나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후보에 오른 동시대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젊은 기수다. 그의 작품 세계 원형을 알 수 있는 2019년 부커상 후보작인 그의 두 번째 단편집이 최근 국내에서 번역 출간됐다. 출판사 제공
소설은 사춘기를 겪는 딸의 불안과 이를 대면하는 부모의 절망을 잔혹동화 같은 설정으로 풀어낸다. 주인공 나는 4년 만에 아내 실비아로부터 연락을 받고 사춘기의 딸 사라를 만나러 간다. 그런데 딸은 밥 대신 새를 산 채로 먹는다. 딸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하지만, 새를 산 채로 먹는다는 생각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고 보면 사람을 잡아먹는 사람들도 있는데, 새를 산 채로 먹는 것쯤은 그리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또 자연적 관점에서 보면 그게 마약보다 건전하고, 사회적 관점에서 보면 열세 살 아이의 임신보다 숨기기 쉬우리라는 생각도 했다.”
딸과 함께 살게 된 나는 아내가 감기에 걸리자 이젠 사라를 온전히 대면하게 된다. 딸의 방에 산 새들을 넣어두고 그녀의 방에서 돌아설 때 나의 두 발은 사정없이 후들거리기 시작한다.
“그 순간 방안에서 날카롭게 꽥꽥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잠시 후 화장실 세면대 수도꼭지를 트는 소리가 났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쏟아지자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이제 어떻게든 저 계단을 내려가게 될 테니까.”
불온한 표제작 ‘입속의 새’를 비롯해 2019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후보에 오른 사만타 슈웨블린의 두 번째 단편집 ‘입속의 새’가 최근 국내에서 번역 출간됐다. 스무 편의 단편 및 짧은 이야기를 모든 이 작품집으로, 그는 “그림 형제와 프란츠 카프카가 아르헨티나를 방문한 듯하다”는 평을 받으며 단번에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의 독창적 소설세계 원형을 확인할 수 있다.
동시대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대표 선수로 발돋움하고 있는 젊은 작가 슈웨블린이 소설집에서 그리는 세상과 인물, 이야기는 어떤 모습일까. 그녀의 작가적 여로는 어디로 향할까. 작가 슈웨블린을 출판사의 도움을 받아서 이메일로 만났다.
―‘입속의 새’에서 부모인 나와 실비아, 딸 사라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요.
“여러 사건들이 벌어지고 난 뒤, 인물들은 아마 사라가 실제로 어떤 존재이든 간에 모두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 사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죠. 이 작품은 청소년 시절을 다룬 이야기이자 부모의 이해심을 다룬 이야기예요. 타인을 사랑하고, 필요한 경우 타인을 보살펴주는 법을 배우는 것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 타인이 자기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뀌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죠.”
소설집을 여는 작품 ‘절망에 빠진 여자들’은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서 남자들에게 버림받은 여자들의 이야기다. 버려진 네 여자는 기어코 한 남자의 차를 빼앗아 달아나기 시작하고, 일군의 남자들이 달려온다.
―왜 이런 결말을 담은 것인지요.
“이 작품을 그렇게 오래전에 썼다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지금 읽어봐도 이 작품은 요즘 쓴 것 같은 데다 오늘날 페미니즘이 생각하는 것들과 아주 가까우니까요. 마지막 장면에서 남자들이 되돌아오잖아요? 그런데 그건 자기 아내를 데리러 오는 게 아니라, 뒤처진 한 남자를 구출하러 오는 거죠. 그 장면은 남자들의 강한 무리 본능과 관련이 있었을 거예요. 이 작품을 쓸 때, 남자들에게서 그런 면을 많이 느꼈거든요.”
마지막 단편 ‘베나비데스의 무거운 여행가방’은 아내를 죽인 한 남자의 이야기다. 베나비데스는 아내를 죽인 뒤 시신을 가방에 담는다. 그는 가방을 끌고 코랄레스 박사를 찾아가고, 코랄레스는 그에게 큐레이터 도노리오를 소개한다. 콘텍스트를 강조하는 도노리오는 시신이 든 가방을 ‘폭력’이라는 주제로 전시, 대성공을 거둔다.
―작품은 어떻게 세상에 나오게 됐습니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요.
1978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난 슈웨블린은 2002년 ‘폭동의 핵심’을 출간해 아르헨티나 국립예술기금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단편집 ‘입속의 새’, 중편소설 ‘피버 드림’, 장편소설 ‘켄투키’ 등을 차례로 펴냈다. 카사데라스아메리카스상, 티그레후안상, 셜리잭슨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며 작품을 쓰고 있다.
―소설 쓰기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방법이나 원칙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무엇보다 독자의 ‘권리’에 대해 많이 생각합니다. 글을 읽으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느낌이 너무 싫고, 화가 나기까지 해요. 저는 심오한 이유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텍스트들,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항상 알고 있는 텍스트들을 읽을 때가 가장 즐겁죠. 제 작품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이런 느낌을 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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